통속 (通俗) : 1.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2.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
통속소설 (通俗小說) : <문학> 예술적 가치보다는 흥미에 중점을 두고, 주제나 성격 묘사보다는 재미있는 사건의 전개에 중점을 두는 소설.
고백하건데 나는 소위 수준 있는 예술보다 통속에 더 잘 끌린다. 통속이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 말고는 뭐라 함부로 정의하고 범주짓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소위 통속, 혹은 통속소설 혹은 통속 영화를 좋아한다. 뒷골목의 허름한 예술극장의 예술영화 보다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삼류 코미디 영화 보기를 더 즐겨하고 주제의식 깊은 소설들 보다는 통속적인 소설들에 더 흥미를 느낀다.
오죽했으면 처음 문학에 흥미를 느끼던 사춘기 시절 주로 가까이에 두고 수십번 씩은 되풀이 해서 읽곤 하던 몇 안되는 소설 중 하나가 40년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이자 대표적 통속소설, 박계주의 <순애보>였겠는가?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내 전이해가 참 짧은 탓이고 통속소설 대부분이 다루고 있는 것이 흥미진진한 연애담인 탓에 그리고 내가 문학에 가장 흥미를 두고 탐독하던 시절이 청소년기였던 탓에 내가 통속 소설에 더 쉬이 끌린 것일게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같은 수준 높은 작품 마저도 내겐 그저 피에르 베주호프와 나타샤의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일 뿐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주로 탐독하던 작가들 중에는 에릭 시걸이나 시드니 셀던, 스티븐 킹, 로빈 쿡, 톰 클랜시 같은 작가들이나 심지어 다니엘 스틸이나 쥬드 데브루까지 있었고, 게다가 남학생치곤 드물게 할리퀸 문고까지 들춰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늘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는걸 부끄러워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엔 스스로를 좀 더 지적이고 수준있는 인텔리겐차가 되길 바랬고 그래서 좀 더 수준 있는 작가의 명작들을 읽어야 한다고, 번역체의 통속소설들 보다는 좀 더 우리글 소설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고, 그래야 내 문체가, 내 글줄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을가라고, 항상 부끄러워하고 몰래 숨어서 읽으며 후회하곤 했지만 여전히 그런 소설들이 아련하고 재미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오래전 하도 여러번 되풀이 해 읽어서 모든 인물과 장면 장면이 익숙한 에릭 시걸의 <닥터스>를 이제와 다시 읽어도 새 책을 읽는 것 처럼 재미있으니 말이다. 이틀에 걸쳐 <닥터스> 상, 하 두 권을 다 읽고 머리에 남은 생각이라곤 에릭 시걸 특유의 동창회 스타일의 하버드 예찬과 약간의 지적유희를 빼면 그저 통속적인 이야기 전개 밖에 남지 않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바로 그 통속적인 이야기 전개가 점점 종이책 보다는 전자책에 더 익숙해져 버린 조금은 호모 디지쿠스에 더 가까운 듯한 인간인 내게 이틀 내내 일과를 제외하고는 종일 종이책을 들고 다니게 만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지적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하고 좀 더 통속적이고 저속한 사람게지 싶어서 이제와 그걸 인정하게 되는 내 나이가 나름 반갑다.
'커피 - 심즈 초이스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박골 심동이 (0) | 2013.04.01 |
---|---|
마음은 연못처럼 그윽하여 (0) | 2013.04.01 |
흑설공주 이야기 (0) | 2013.02.27 |
구운몽 - 양소유가 사랑한 여인은 누구? (0) | 2012.11.21 |
옥루몽, 구운몽 - 천상애 게임 만들기 (0) | 201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