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피 - 심즈 초이스/책 이야기

흑설공주 이야기



인천의 한 교회에서 진행하는 북콘서트를 돕기 위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백설공주를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재해석해낸 바바라 G 워커의 <흑설공주>를 다루는데바바라 G 워커는 기존 <백설공주>에서 계모가 악한 마녀로 나와 백설공주와 대립하는건 그리고 단순히 외모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건 여성적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된다고 본듯 합니다.

결국 계모를 착하고 현명한 캐릭터로 바꾸는 대신에 기존의 순박했던 사냥꾼 캐릭터를 바꾸어 가부장적 폭력의 주체로 치환시켜버렸네요. 사냥꾼 그러니까 헌트경은 뚱뚱하고 못생긴 남성이지만 감히 예쁜 흑설공주를 노리고 못생긴 헌트경이 싫은 백설공주는 고난을 당하고 그 고난과 역경을 계모의 현명한 지략으로 돌파해서 이겨내고 끝내 차밍왕자와 결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건 뭐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지 저자가 문제 제기하고 있는 성 비하, 외모지상주의는 전혀 고쳐진 바가 없지 않나요? 더구나 백설이 흑설로 바뀌었을 뿐, 공주의 캐릭터가 크게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핍박받다가 수동적으로 남성에 의해 구원받는 역할일 뿐이네요.

사실 내 관점에서 <백설공주>나 <콩쥐팥쥐> <신데렐라> <장화홍련>등에서 등장하는 계모의 괴롭힘에 관한 서사는 피지배층을 억압하는 지배층의 폭력에 대한 고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이 땅의 신적 존재는 무관심하고 무능력한듯 보이고 이 땅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계모(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지닌)는 여성, 딸로 대변되는 이 땅의 민초를 핍박하고 착취하는 것에 대한 고발 말입니다.

<흑설공주>에서는 공주를 핍박하는 이 권력자가 계모에서 헌트경으로 바뀌었는데 사실 이는 생리학적 성 바꿈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어보입니다. 실제로 권력을 쥐고 있는건 계모 왕비인데 굳이 왜 신하인 헌트경에게 휘둘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계모가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거나 하는 것은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의 정당성 문제가 아름다움이라는 조건으로 치환된게 아닐까요? 고전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착하고 옳은 사람, 고귀한 사람이고 주로 왕자와 공주로 등장합니다. 바로 아버지의 신권을 이어받아 정통성을 지닌 존재인건데 정통성 없이 권력을 얻은 계모가 정당한 정통성을 지닌 딸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결국 공주를 구원하는건 남성입니다.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전환되었을 뿐 남성이라는 주체에 의해 객체인 여성이 구원 당하는 이야기일 뿐인거죠. 여성인 공주는 그저 남성인 일곱 난장이의 조력을 얻어 역경을 이겨내고 왕자의 키스를 받고 죽음에서 구원받는 수동적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흑설공주>의 저자 바바라 G 워커가 <백설공주>에서 변화시켰어야 할 것은 계모의 못된 성격이라기 보다는 백설공주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이었어야하지 않을까요?

사족을 좀 더 달아보면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여성 캐릭터들은 핍박받고 고난을 이겨내는 존재인 것은 <콩쥐팥쥐>나 <장화홍련>등 한국 설화와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그것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듯 보입니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는 여러 조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역경을 이겨내고는 왕자에 의해 수동적인 구원을 얻는 캐릭터들입니다. 반면 한국의 여성들은 좀 더 진취적이죠. 권력자인 계모의 핍박을 받고 또 받다가 조력자 없이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말지만 시체가 되어, 귀신이 되어서 끝내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고발해내고야 마는 겁니다. 아니 바리데기처럼 죽음까지도 이겨내는 서천서역국으로의 고난여행을 거쳐내고는 끝내 수동적일 뿐이던 가부장(아버지)를 구원해내는 구원의 주체역할까지 해내지요.

그래서 난 한국의 한 많은 여성 캐릭터가, 풀처럼 바람에 쉬이 누이지만 끝끝내 다시 일어서고 마는 한국의 민초들이 더 힘차고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부당한 폭력 앞에서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다가 누군가의 조력으로 구원받는게 아니라 귀신이 되어서도 부당한 폭력을 끝끝내 고발하는 한국의 여성, 얼마나 힘차고 멋지냔 말이지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출애굽기 3장 7~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