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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 심즈 초이스/음악 이야기

김흥겸, 민중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늙으신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 뿐인 민중의 아버지


        - 김흥겸 노래, <민중의 아버지>







미사여구로 치장된 멋드러진 기도보다 
아침부터 김흥겸 작 <민중의 아버지>를 연달아 듣고있다. 

절절한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는 진짜배기 민초의 기도

화상당한 하나님, 귀먹은 하나님, 

이 거짓된 세상을 외면하고 얼굴을 돌리시는 늙으신 아버지...







연세대학교 학생이던 김흥겸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훗날 가수 안치환에 의해 다시 불려져 음반에도 수록되었던 이 곡, <민중의 아버지>는 80년대 널리 불리우던 민중가요였다. 


혀 짤린 하느님, 귀 먹은 하느님, 화상당한 하느님, 늙으신 아버지..


이 노래가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가히 참람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그려내고 있다. 하나님이 혀가 짤리고 귀가 먹으신 모습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항거 불능인 절대 권력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좌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좌절한 인간 앞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결코 깨끗한 옷을 입은 정갈한 하나님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땅의 아픔을, 고통을, 울부짖음의 눈물을 전혀 듣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과연 그 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이 땅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는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80년 광주의 이야기가 알음알음 전해지던 당시 대학가에서 80년 광주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1983년 연세대 채플에서 당시 신과대 학생이던 김흥겸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




그래요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해요. 그런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독재자의 종말이 백주 대낮에 수천 명을 학살하는 광주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요? 학교를 보세요. 저 악의 무리들을 뚫고 당신을 믿지 않은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나올 때 당신이 선택했다는 우리도 아무 것 못했지만 당신은 또 무엇을 했는가요? 우리를 시키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보라니까요. 정말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실패작인 우리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당신, 바로 당신 야훼 하느님입니다. ...
주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뜻을 더 이상 우리가 이 땅에서 실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힘들어서 못해먹겠습니다. 우리보고 회개하라고요? 우리가 죄인이라고요? 정말 울며불며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이요, 죄인중의 죄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보고 하라 말고 당신이 한 번 이 땅에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그래요 우리는 사실 당신의 선택을 받은 무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처럼 살다 그렇게 죽기 위해 있는 게 아니예요. 사실은 이렇게 예수의 처참한 죽음을 예배드리며 팔아먹기 위해, 또 예수의 그 고통스런 삶과 당신의 이야기를 강의하며 팔아먹고 살기 위한 무리들이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신앙을, 신학을 선택한 것뿐이라고요.
그래도 고맙지요. 당신과 예수가 있어서 그것으로 여러 사람이 2천년 동안 먹고 살게 해주시니. ... 불쌍한 하느님, 우리 같은 것을 앞세워 하느님나라를 만들겠다는 하느님, 당신이 그래도 절 사랑한다면 이 길을 가다가 변절하기 직전에 죽여주소서. 당신에게 간구하는 당신의 사람은 이 길을 가다 지쳐 쓰러져 돌아서려 할 때, 그 직전에 죽여주는 잔인한 축복을 허락하소서.  그렇게 사랑하셔서 당신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정말 신앙인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정말 사랑한다면 아픈이들의 울부짖음에 침묵하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참신앙의 모습인데, 과연 오늘날 우리는, 아니 내 자신은 참 신앙의 모습을 갖고 살고 있는가? 돌이켜보면 부끄러움만 가득하다..시대의 아픔 앞에서, 하나님 앞에 정말 아프다고 울어라도 봐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거리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는데, 미사여구 섞인 가식적인 기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서 김흥겸의 기도는 아파하는 이 땅 민초들의 눈물이었고 상처였으며 울부짖음의 중보였다. 











예수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예수, 좋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너무 좋아하면

그 사람이 널 가만 내버려두질 않아.


가만 있으면 막 성질 부려.

사랑하라고,

나가서 사랑하라고,

사랑이 어디 끝이 있니?

완성이 있니?

잘못하면 아주 인생 조지고 망쪼 드는거야.

 

사람 한번 물면 놓아 주질 않아.


그래도 마음 한 귀퉁이에 기쁨은 있지.


       - 김흥겸, <예수 너무 좋아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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