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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 시 한편의 시원함/추천시

김춘수, 꽃 - 이름에 걸맞는 꽃






내 이름은 재훈(載薰)이다.

실을 '載'에 향기'勳', 향기를 지닌 자란 뜻이다.

한글로는 참 흔한 이름인데 의외로 한자로는 특이한 이름이다.

薰자가 이름에서 사용되지만 드문 편이고 대부분 勳자를 많이 쓴다.

중국이나 타이완 친구들은 그래서 늘 여자이름이라고 놀리곤 한다.


내 이름은 Bakhtzhan(바큿잔)이다.

카작어(Kazakh)로 '행복한 영혼' 혹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보다 앞선 기수로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활동했던 선배 이름을

물려받은 이름이라, 처음엔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내 이름은 'Joshua'이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영어 이름이지만

Seattle 시절엔 그 이름으로 불리웠고,

지금도 Seattle 시절 친구들은 모두 나를 'Joshua'로 부르곤 한다.

워낙 소심한 성격 탓에 늘 여호수아의 담대함을 갖기를 소원하여 지은 이름이다.


내 이름은 Moses이다.

모세와 같은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십대 시절부터 늘 이메일이나 아이디로 자주 사용하는 이름이다.

한 때 내 이름보다 '모세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많았던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나라는 존재를 칭하는 이름들은 모두

현재의 나를 규정하기 보다는, 되고픈 이상향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니기 보다는 노총각 냄새만 풀풀 풍기며

늘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데도 막상 지친 표정을 자주 짖고

여전히 많은 일상에서 상당히 소심한 면모를 보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는' 

김춘수의 시 '꽃'의 싯말처럼

나도 이제 내 이름에 걸맞는 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 2011년 12월 15일 Facebook에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