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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 이야기 한 조각

멘토가 아니라 사람이다



1. 
대학시절 정말 끔직하게 미워하던 선배가 있었다.
도저히 얼굴도 마주치기 싫을 만큼 밉고 싫어서
몇 년 간은 일부러 피해다녔을 정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대체 그 선배에게 무얼 기대했던걸까?
나도 어렸고 그래서 상처받기 쉬운 나이였지만
그 선배도 고작 스물 두어살 한참 어린 나이였는데

나라고 그 나이에 실수 없이, 잘못 없이 살았다 말할 수 없는데
나는 왜 유독 그에게 실망했고 또 미워했을까?

2. 
여러 학교와 교회를 거치면서 여러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정말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스승들도 몇 분 계셨다.

내가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승 중 한 분이 몇 해전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심각한 곤경에 처하신 적이 있었다.
분명 그 분께서 잘못하신 일이었고,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 분 스스로도 제자들 앞에서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그 분을 좋아한다.
그 분 안에 있는 분명한 한계점들과 함께
그 분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또 그 분이 내게 배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기에
여전히 존경하고 따르고픈 스승으로 기억에 남아계시다.

3.
스타 강사가 논문을 표절하고, 인권운동가가 성희롱을 했단다.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고 또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세상이다.
멘토의 추락이네, 멘티들은 멘붕이네 말들이 참 많은데
대체 그들에게 무얼 바랬길래 멘붕이되는걸까?

그가 좋은 책을 펴내고 좋은 강연을 하고 좋은 활동들을 했다고
그 사실들이 그 사람의 무흠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그 사람들이 완전무결한 신적 존재가 결코 아니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한 사람을 띄우고 찬양하다가
또 너무 쉽게 돌아서고 비난의 화살을 날려버린다.

4.
멘토라는 말이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간혹가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을 보곤 한다.

"내 주변에는 존경하고 따를 만한 멘토가 없어."

논어 술이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 
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는 법이다.
그들의 좋은 점을 가려서 따르고
나쁜 점을 살펴서 자기 스스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는 길에 나를 도와주고 사랑해주며
팁이라도 한 자락 던져 줄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스승이고 멘토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부족한 부분, 한계점도 분명 있을테지만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가려 배우면 되는건데
무슨 종교의 신 찾듯이 멘토를 찾고 대하려는 건가?

5. 조심스러운 것은 결코 이런 말들이 
죄 지은 자에게 건네는 면죄부가 되선 안된다는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이 죄의 문제를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권징이 제대로 서지 않은 교회, 사회, 법이야 말로
죄인을 더욱 죄인되게 만드는 법이니까.

사람은 분명 사랑해야할 대상이고
죄는 분명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6.
한편 스스로 옷길을 여미게 되는건
내 스스로 한 사람의 목사로서
벼락 스타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 그렇게 스타가 된 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내 안의 한계점, 잘못, 실수들에 눈 감고
그저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면 된다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7.
나의 연약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남의 연약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의 사랑을 알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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