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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 이야기 한 조각

경의선 추억담





파주 문산에서 서울에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문산 터미널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통일로를 통해 은평구 구파발로 가거나 아니면
문산역에서 경의선 전철을 타고 서울역 혹은 공덕역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 멀미도 하는데다 버스보단 전철이 책을 읽기에 편해서
주로 경의선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는 편이다.

지금은 세련된 전철이 되어 15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의선은
낡은 무궁화호 열차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던 기차 철도였더랬다.

그나마 복선도 못되는 단선 철도였던지라
마주오는 열차가 지나갈 때 까지 한참을 노상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던
워낙 느려 차창 밖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던
꽤나 여유를 간직한 열차였다.

전철이 아닌 기차였던지라 좌석도 두 사람 앉을 의자가
두 개씩 서로 마주본 채로 통로를 사이에 두고 두 줄로 자리했다.
창문은 양 끝에 있는 걸쇠를 누르고 힘주어 위로 올려야만
겨우 창문 밖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그나마 낡아서 아무리 힘 주어도 열리지 않는 창문도 많았다.

열차를 타려면 돈을 내고 두꺼운 종이로 된 열차표를 받아서
역에서 한참을 줄서서 기다리다가
역무원 아저씨가 펀치로 열차표에 구멍 뚤어주고 난 다음에야
겨우 플래폼으로 나가서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중간 중간 간이역도 많았고
당시 연인들의 주된 데이트 코스 백마역도 지나가던 열차는
한시간 반을 달려 수색을 지나 신촌 그리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계단을 올라서 역사로 들어가도 되었지만
그보단 지하철 1호선을 가깝게 갈아타기 위해서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곤 했다.

가끔 못된 친구들은 서울역에서 열차를 탈 때도
이 지하 통로를 통해 플래폼으로 들어가고
내릴 때는 간이역이던 파주역에서 내리는 식으로
무임승차도 자주 하고는 했었다.

대학시절 이 열차를 타고 학교를 오가곤 했다.
문산역에서 출발하여 한시간 이십분 쯤 넘어가면
신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내려 한참을 걸어 다시 2호선 이대입구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또 30분은 가야 겨우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는 늘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중간 통로에 서서 옆사람들에 기댄채로
열차가 덜컹거리는대로 따라서 함께 덜컹거리곤 했다.

그러다 홍익회 아저씨가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판매하느라고
열차 통로를 지날 때면 통로에 가득 서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양 옆으로 움직여 길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함께 경의선으로 통학하던 친구들은
이 홍익회 카트를 탱크라고 부르곤 했었다.
눈치 빠른 친구 하나가 "탱크 온다"라고 속삭이면
통로를 가득 매우던 사람들이 좌석 쪽으로 옮겨서
가까쓰로 길을 내어주곤 하던, 그래서 탱크였다.

또래 친구들 통학 시간이 대부분 비슷했던지라
늘 등하교길에 경의선을 타면 언제나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일부러 약속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 누구나 항상 열차 맨 끝 차량에만 타곤 했고
그 안에서 서로의 대학생활 이야기 연애 이야기로 
문산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던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통로 건너 좌석에 앉은 예쁘장한 또래 여학생을 흘금거리기도 하고
낡아서 그랬는지 유독 크게 들리던 덜컹덜컹 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었더랬다.

우습게도 대학시절에 난 의성어 두가지에 빠져 있었는데
하나는 어느날 새벽 세시 반에 대학 교정을 서성이다 들었던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였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경의선 열차가 덜컹거리는 소리였다.

출발해서 멈추어 설 때까지 쉬지 않고 덜컹거리던 그 소리는
마치 타악기로 박자에 맞추어 연주하는 소리만 같아서
내겐 꼭 열차가 연주하는 음악처럼 들리곤 했다.

이 낡은 열차가 어느날 유치한 꽃무니 열차로 바뀌더니
몇년 지나지 않아 복선 전철이 깔리고는
세련된 전철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 한 시간에 한 대가 겨우 다니던
그나마도 한시간 반을 훌쩍 넘겨야 서울역에 가 닿던 열차가
오십분도 안되어 서울 DMC 역에 도달하는 전철이 되었지만

그 시절 함께 열차 뒷 차량에 오르던 친구들도
건너편 자리에 새침하게 앉아 있던 여학생도
카트에 주전부리를 싣고 다니던 탱크 홍익회 아저씨도
이제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친 저녁시간 경의선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노라니
서로의 대학 생활 이야기로 한참을 재잘거리는
대학 새내기로 보이는 두 여학생 수다를 엿듯다가 문득
그 시절 낡은 무궁화 열차가 새삼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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