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그 중에서도 목사라는 직분을 지니고 있다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고 싫게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내게있어 죽음이란 이미지가 '단절' 혹은 '끝'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거다.
사람이었고, 이름을 지녔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고, 마음 속에 슬픔과 기쁨 즐거움과 노여움을 품었던 존재가
한순간 죽음으로 그 마음도 생각도 이름도 존재까지도 단절되는 것, 그렇게 생각조차 끊어지는 죽음이라면 끔찍하게 무섭고 싫다. 아니 그래서 차가운 죽음 보다는 영생을 바라보는 기독교 신앙을 좋아하는걸게다.
2011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한 에니메이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는 어릴적 죽은 한 친구와 그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어쩌면 이 작품이 정말로 담아내고자 하는건 '죽음' 보다는 '단절'이었던걸로 보인다.
작품 안에서 죽음이란 그저 성불하여 환생하는 또 다른 시작일 뿐이지만 한편으로 이승에서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의 단절이기에 두렵고 슬퍼지는 것이다. 전하지 못한 고백, 전하지 못한 사과, 미처 나누지 못한 그 마음과 생각들이 친구의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중단되어버렸다. 내일 사과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의 고백처럼 더이상 내일은 찾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죽은 소녀의 유령이 친구를 찾아오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어릴적 친구들이 나이들어 소원해진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여 소녀의 부탁을 찾아가는 플롯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사실상 작품 안에서 가장 부각되는 갈등은 소녀의 죽음이 아니라 남아있는 친구들 사이의 단절되어버린 관계였다.
좋아하던 친구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면서 눈물과 웃음 감정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주인공이나 역시나 친구의 죽음이 불러온 각자의 죄책감에 눌려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린 친구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죽은 소녀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단절되어버린 초평화 버스터스의 유년시절과 다시 대면하는 것, 전하지 못했던 그 고백과 사과들을 서로 다시 전할 수 있게 되고 멈추어버렸던 시간을 다시 이어가는 것이었다.
작품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실제로 환생이라는 개념은 꽤나 매력적이다.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일 수 있기에 인간이 가진 궁극적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소 덜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환생이 정말 죽음의 극복일까? 내가 죽어서 김아무개나 이아무개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내가 전생의 나를, 내 가족을, 내 친구들을, 내가 사고하고 궁구했던 것들을 다 잊어버린채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가야한다면 과연 그것이 죽음이 가져오는 단절의 극복이 되는것일까? 작품은 성불하지 못하고 유령이 되어 나타난 친구와 다시 소통함으로써 멈추었던 시간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죽음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 속 유령이 되어 돌아온 친구의 모습은 사실 유령이라기 보단 죽은 친구가 되살아난 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뿐이지 사물을 만지고, 요리도 할뿐더러 음식을 먹기까지 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야말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이며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이라 할 수 있을터인데 작품 속 유령 멘마는 모든 삶의 행위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밤에 잠도 자고 꿈도 꾼다. 이야기 안에서 멘마가 죽은 존재임을 드러내는건 단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 하나 뿐이다. 그나마도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회복한 친구들이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되는 장면에서 극복되어버린다. 결국 멘마는 성불직전의 유령이라기 보다는 마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존재로 보이기까지 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죽음이 가져오는 단절을 극복하고 생명과 생명을 다시 이어주신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가 죄의 무게에 눌려사는 인간들을 죄와 죽음의 문제에서 건저내어 결국 죽음의 단절에서 그 너머의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구원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 디모데후서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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