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이 "아줌마 감수성"은 멈출줄을 몰라서
여전히 한국 드라마를 조금씩이라도 찾아볼 때가 있다.
요즘은 유일하게 찾아보는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이다.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던 덕에, 훈민정음 해례를 완독하느라 고생해본 덕에
이래저래 새삼스럽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극 중 장혁과 신세경이 노비로 있던 집안이 바로 우리 심씨 집안...
내가 청송심씨 안효공파인데 이 안효공이 바로 세종의 장인 심온이다.
세종의 리더십이라던지 장혁과 신세경의 로맨스라던지 흥미거리는 참 많은데
그 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두 명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세종의 요절한 아들 광평대군이었다.
세종의 최측근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최만리는 늘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자기네들의 이상과 딴 생각에 세종과 각을 세우는 밀본 따위와는 근본이 다르다.
태종의 측근이던 조만리와도 다르다. 그는 세종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믿고 고수하는 신념으로 한글창제를 반대하고 나섰다.
실제 정사에서도 세종의 한글창제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반대세력은
극중 창조된 인물인 이신적이니 정기준이니 밀본 따위가 아니라
바로 최만리였다.
세종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인 그가
제대로 역사를 읽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서
한글과 세종의 큰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광평대군...
아버지의 신념에 감복되어 아버지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제 목숨까지 내버린 인물..
사실 광평대군에게 관심이 간 것은 그의 극중 캐릭터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실제 정사에서 드러나는 광평대군의 모습과
야사에서 기록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문무에 모두 뛰어나고 세종의 천재성을 가장 닮은 아들이었다는 광평대군은
스무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야사에서 기록하는 그의 사망 원인은 다름 아닌
목에 걸린 생선가시....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을 빼지 못하여,
아무런 음식도 섭취하지 못한채로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당대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대왕의 아들이 굶어죽었다고?
이건 서민들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못이루신다는 가카의 말씀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당대의 의료수준이라던지, 야사의 정확성의 문제라던지는 차치하고
목에 걸린 가시 하나에도 왕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때로 우리 삶을 좀먹어 가는 것들은 크고 대단한 것들 보다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더 많다.
아주 작은 유혹, 아주 작은 흔들림에서 훗날 커더란 파열이 시작되는 법...
여전히 내 삶의 목구멍에 박혀있는 가시를 빼내지 못하는 한
내 영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
최만리처럼 당대의 학문에는 능통해서 역사를 시절을 못 읽어내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인가?
광평대군처럼 목에 걸린 가시 하나 때문에 굶어죽고 말 것인가?
주님 바라건대
나로 늘 깨어 있게 하시어서
시작과 끝을 내가 걸어가는 길을 바로 보게 하옵시고
내 삶을 좀먹어 오는 가시들을 바라 보고 뽑아내게 하옵소서.
-- 2011년 12월 21일 Facebook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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