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덕지덕지 욕망이 묻어나는
주일 저녁, 홀로 극장에 가서 박범신 원작 정지우 감독 영화 <은교>를 보았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어찌나 욕망들이 덕지덕지 뭍어 있는지...
한 둘 정도면 끝날 쇼트 하나에 어찌나 많은 감정선들이 교차하는지
등장인물 각자 각자의 욕망과 관객들의 욕망까지 교차해버린다.
17살 여자아이를 한 없이 대상화 시키는듯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그 아이마저 욕망의 바다에 엉켜들고만다.
시인의 문학적 언어와 공대생의 직설적 언어가 한 없이 대립하다가는
어느새 그 간극을 17살 여고생의 직관적 언어가 한 순간에 꿰뚫어버린다.
별과 연필의 이미지를 이승과 저승만큼의 거리로 옮겨놓는 시적치환은
어느새 젊음을 향한, 문학을 향한, 사랑을 향한 욕망을
그저 한 소녀에 대한 관음적이고 폭력적인 욕망의 치환으로 대치된다.
극중 자주 등장하는 거울의 이미지나
스승에 대한 애증을 은교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려는 지우나
은교와 젊음에 대한 동경을 젊은 제자에 대한 복수로 표출하는 적요
그리고 욕망과 시적 언어가 치환되는 과정에선 흡사
라깡이나 지라르 혹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까지 엿보였다 말한다면
조금 지나친 비약일까?
장면 장면마다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디테일한 묘사와 미장센만으로도
정지우 감독이 <은교>라는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려냈는가 엿볼수 있었다.
그저 십대 소녀인 신인배우의 전라 베드신을 내세운듯했던 광고전략에 비하자면
작품 자체의 무게감이 아까웠을 뿐..
곁다리 하나 더 붙이자면...
굳이 왜 젊은배우 박해일이 늙은 시인을 연기했을까
진짜 나이든 관록있는 배우가 연기했어야 리얼리티가 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극중 은교와의 정사를 통해
젊은 시절의 적요로 돌아가는 장면을 볼 때까지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늙은 적요가 은교의 젊은 몸을 탐하듯 파고 들었던 그녀의 티셔츠 안에서
까까머리 앳된 적요의 얼굴이 빠져나오는걸 보면서
그 앳된 얼굴로 은교의 가슴에 안기는 장면을 보면서야 비로소
이 역할을 왜 젊은 배우가 맡아야 했는가 눈치챌 수 있었다.
- 2012년 4월 29일, Facebook에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