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비 - 뻔한 코드를 식상하지 않게
시청률은 별로 높게 나오지 못하는듯 하지만
윤석호 감독의 새 드라마 '사랑비'를 눈여겨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영화 '클래식'과 코드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식의 코드가 같은 서사는 영화, 드라마에 널린거 아닌가?
내 가까운 지인들을 잘 알지만
영화 '클래식'만큼 내가 싫어하고 욕 많이 하는 영화도 드물다.
내 어린시절 나를 서사의 세계로 이끌었던
'시라노 드 벨주락'의 아름다운 짝사랑 서사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유행하던 하이틴 드라마의 서사들을
그대로 짜깁기해서 만든 서사가 바로 '클래식'이 아니던가..
이 얘기 저 얘기 다 끌어와 짜맞추느라 정작 제 서사전개는
아주 산으로 가게 만들었던 영화 '클래식'이다.
사실 윤석호의 '사랑비'도 비슷한 서사를 지니고 있긴 하다.
더구나 트랜디 드라마의 효시라고도 일컬어지는 윤석호 감독이기에
어떤 사랑 이야기가 애절한 코드인지를 잘 알고 있는 이이다.
영화 '클래식'이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얼마전 '건축학개론'이 그랬던 것 처럼..
오래된 예전의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금 불러오는 서사들이기에
어찌보면 참 뻔하고 비슷비슷한 장면들을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서사 전개나 미장센 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힘을 빌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한계도
'사랑비'에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바로
작가가 가진, 감독이 가진 능력이 아닌가 싶다.
몇가지 첫사랑 소재의 원형들을
너무 그대로 빤히 보이게 가져다 쓴게 <클래식>이라면,
그 원형들을 조금 넘치게 감추는 바람에
오히려 조금 서사전개가 밋밋해진게 <건축학개론> 이라면,
참 그 뻔한 원형 코드들을 가지고
식상하지 않게, 낯설지도 않게 풀어내는게 <사랑비>인듯 싶다.
사실 <사랑비>는 이제 겨우 초반 4회를 지나기 때문에
제대로된 평가를 내리기엔 좀 성급한 면이 있다.
다만, 진짜 96학번인 내가 쉽게 공감하지 못한
<건축학개론>의 90년대 대학문화들에 비해서
전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70년대 대학문화임에도
그 분위기 안으로 빠져들게 만든게
<사랑비>의 초반 70년대 이야기 전개인듯 싶었다.
역시나 독자, 관객을 끌어들이는건
이야기꾼이 얼마나 이야기 얼개를 재미나게 끌어가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