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 시 한편의 시원함/추천시
정호승, 봄날
셈들
2014. 8. 25. 16:35
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에 냉이꽃은 하얗게 피었습니다
그 아무도 자기의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는 개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무심코 새 한마리가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우리들 인생도 어느새 날이 저물고
까치집도 비에 젖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내 무덤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의 새똥이 아름다운 봄날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 정호승 詩 '봄날'
가장 좋아하는 시가 뭐냐고 물으면 윤동주나 기형도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주로 정호승의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또 기다리는 편지'나 이 시 '봄날'을 유독...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저 똥폼 잡지 말자고...
일부러 심각한 포즈 취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건 다 여전히 내 안에 똥들이 가득한 탓이라고...
여전히 나는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저 밉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 밉다.
사랑하든 미워하든
그리 심각할 것 없는데...
여전히 내 안에
예수께서 온전히 거하지 못하는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