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째 굴러온 당신 - 한국드라마의 서스펜스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거나,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거나
숨겨온 정체가 드러나는 서사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드물다.
특히나 그 비밀을 독자 혹은 시청자, 관객들이 미리 알고 있다면...
영화에서 공포물을 구분할 때
등장인물이 모르는걸 관객도 모르고 있을 때 '스릴러'라 하고
관객은 알지만 등장인물만 모를 때를 '서스펜스'라고 부른다.
'스릴러'는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과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깜짝 놀라게 만들며 재미를 돋운다면
'서스펜스'는 언제 등장인물에게 그 '비밀'이 드러나는가를 기다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하고 기다리게 만들어 재미를 증폭시킨다.
그래서 '스릴러'는 주로 등장인물의 시선에 따라 카메라가 제한되고
'서스펜스'는 좀 더 넓고 자유로운 카메라 앵글을 보장한다.
굳이 소설로 끼워 맞추자면
전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후자는전지적 작가 시점일게다.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으로 나는 '서스펜스'가 훨씬 재미있다.
소설도 1인칭보다는 전지적 시점이 훨씬 마음에 든다.
영화 <수퍼맨> 시리즈에서
'로이스'가 '클라크 켄트'의 정체를 언제 알게 되는가
비슷한 영웅물들
가령 <쾌걸 조로>나 <스파이더맨>에서
영웅의 정체가 언제 드러나는가 하는 것들..
그리고 몇 해 전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점 찍은 구은재의 정체가 언제 드러나는가 하는 것들
그리고 최근의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테리 강과 가족들이 언제 서로를 알게 되는가 하는 것들...
그 긴장과 기대의 감정선이 참 흥미롭다.
그리고 그렇게 긴장하며 기다리는 시간들 보다도
모든 비밀이 드러나고 감정이 고조에 다다르는 그 순간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면에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딱 그만큼의 긴장과 초조함, 그리고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강부자와 장용 윤여정이 그려내는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회환과 그리움
그리고 유준상이 그려내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함과 원망까지도...
가족드라마인줄 알고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출생의 비밀, 숨겨진 정체 같은 상당히 원초적인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읽혀지는 것...
그게 바로 한국 드라마의 힘이겠지...
언제 친자확인 되나만 기다리며 1회부터 기다려왔더니
역시 어느새 확인되고 지난 주 이번 주 내내 눈물바다...
사실 드라마 영화 좋아하는 나로선 최루성 짙은거 안좋아했는데
때론 찔끔 눈물 흘리면서도 입으론 유치한 최루라고 씹어댔는데
점점 나도 마음이 약해져가는건지,유치해져 가는건지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감정선 건드려버리는 최루가 좋아진다.
사실, 죽은줄 알았던 인물이 살아돌아오거나
기억을 잃은 인물이 기억을 찾아서 가족들과 상봉하는 이야기만큼
감정선을 쉽게 폭발시킬 수 있는 장면도 드물다.
덕분에 가끔씩 대책없이 울어보고 싶은데 눈물도 안나는 날
그렇게 감정선 터뜨리는 장면들을 찾아보곤 한다.
가령 윤석호 감독의 계절 4부작의 효시였던
<가을 동화>의 초반 1회부터 7회 정도까지의 전개들은
꽤나 쉽게 감정선을 건드려주는 장면들이 많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진 막장 스토리는 여전히 불만족스럽지만...
그런면에서 <넝쿨>도 <가을동화>랑 비슷해질듯 싶다.
초반부는 중견 연기자들의 묵직한 눈물연기로 버텼다면
중반 이후는 윤여정과 김남주의 고부갈등이 주된 스토리일터.
내가 참 싫어하는 막장으로 갈듯 싶어 벌써 아쉬워진다.
<가을동화>가 딱 7편이나 8편에서 멈추는게 좋았다 생각한 만큼
<넝쿨>도 그냥 딱 10부나 11부에서 멈추는게 좋아질듯 싶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여유를 부리며
드라마들과 영화들을 뒤적거리며
바로 그 순간들만 골라보는 중이다.
살다보면 '순간'은 늘 쉽게 '과거'에 묻혀버린다.
그래도 그 '순간'을 기다리며 기대하던 그 '마음'만큼은
시간도 어찌하지 못할 '영원'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