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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 이야기 한 조각

욕설에 관하여





대학시절 자취방 구석에서 밤을 새우며 읽었던 

도몬 후유지의 소설 '불씨'

개혁이란 반대자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라면서

희망의 불씨를 나누고 또 나누어

결국 반대자들까지 감화시켰다던 그 이야기..


그때는 그런식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옳은 것이라고 믿었더랬다.


그 아름다운 소설을 밤새워 읽던 그 때엔

난 지극히도 보수적인 교회와 학생선교단체에 속해 있었고

정말 '사랑'과 '이해'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줄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이십대였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 '사랑'이 제 살과 피를 내어준 예수의 희생적 '사랑'이며

나 역시 그 '사랑'을 닮아서 함께 피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거라는걸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다른 이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것은

행동하지 않는 사랑만으론 불가능하다는걸 알지 못했다.


십여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물정 모르던 이십대처럼 

'사랑'과 '이해'만 공허하게 부르짖지 못하면서

또 여전히 몸은 여전히 예수를 닮지도 못해서

행동하지 못하고 게으르지만...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고

화내야 할 때 화내지 못하며

옳지 않음을 용납해야 하는 것이

결코 '사랑'이란 말로 포장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나도 욕이 싫다.

내 입술에 욕을 담아내는게 부끄럽게 싫다.

그 욕이 누군가를 향한 경멸을 담아내고 있기에

그 '경멸'이 진저리 쳐지게 싫어서

나는 욕을 쉽게 쓸 줄 모른다.


그런 경멸이 판을 치는 모습이 정말 싫어서

'트위터'도 잘 안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하도 '욕'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분주하고

선거결과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이 많아지는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 내 형제에게 돌을 던지는 자에게

내 여동생을 겁탈하려는 자에게

내 집을 빼앗아 불태우려는 자에게


내가 과연 해줄 말이 무엇일까?

과연 저들에게 쉽사리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적에게도 사랑을 배풀라 하셨던 주님이지만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지

결코 저들이 행하는 폭력까지 관용하라는게 아닐텐데...


멈출줄 모르고 굴러가는 폭력적인 권력 앞에서

욕이라도 한번 싸질러 주지 못한다면

아니 '욕'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분노를 표해내지 못한다면

(사실 욕 말고 분노를 제대로 표할 방법이 무언가 싶기도 하다)


과연 나는 그 폭력앞에 아파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을까?

서슴없이 그들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 2012년 4월 12일 Facebook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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